시작하는 글
가히 아파트 공화국이라고 할 수 있는 대한민국에서 공동주택이라는 이름으로 한 건물에 많은 가구들이 빼곡히 모여 살고 있다. 이런 곳에서 다른 세대로부터 전해져오는 각종 소음으로부터 자유를 꿈꾼다는 것은 언강생심이다.
대한민국 최고의 부자들이 모여산다는 최고의 입지에 지어진 서울 하이엔드 아파트에서조차도 층간소음으로 인한 이웃간의 분쟁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으니...건축 기술 및 자재의 부실로 마냥 치부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경험담
층간소음은 안겪어보면 모른다고 한다. 한 번 각인된 소리는 절대 잊혀지지 않는다는 '귀가 트였어요'라는 속담도 전해진다.
오늘의 피해자가 또 다른 누군가에게 가해자가 될 수도 있는 게 또한 층간소음의 아이러니이기도 하다.
내가 아랫집으로부터 민원을 제기받으면 예민충인 아랫집 사람들을 만나서 힘들고
내가 윗집으로부터 발망치를 들으면 개념없는 윗집 사람들을 만나서 힘드니
내가 마치 샌드위치 빵 사이에 낀 햄이 된 것 같다.
한없는 자기 연민의 굴레에 빠질 수 밖에 없는 환경이다.
내가 딱 저랬다.
아이가 어릴 때 걸음마를 배운다고 몇 번 넘어지니 아랫집에서 인터폰으로 전화를 해댄다.
"너무 쿵쿵거리는 거 아니에요? 공동주택 살면서 조심하셔야죠!"
"죄송합니다. 그런데 아이가 뛰는 것도 아니고 시간도 오후 3시고 하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아니, 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 우리 집 천장 위에 살면서 그런 말이 나와요? 바닥에 매트 안깔았어요? 지금 매트 시공했는지 보러갈까요?"
"매트는 이미 깔았구요. 우리가 매트 시공했는지까지 점검받아야 합니까?"
이렇게 감정적으로 대치가 되니 서로 눈치 이상의 신경전을 벌이고 살 수 밖에 없다. 특히,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면 인사는 커녕 증오와 분노의 눈빛과 태도를 쏘아대니 그 찰나의 시간이 불편함으로 물들어 굉장히 길게 느껴진다.
1인 가구이던 윗집이 어느 날 이사를 나가고 초등학생 아들 둘을 둔 4인 가족이 이사를 들어왔다.
조용함에 익숙해져서 당연하다고 느꼈던 밤에 낯선 소리가 들린다.
밤12시가 넘어까지 들리는 발망치와 의자 끄는 소리.... 모든 동선이 파악될 만큼 나도 귀가 트여갔다.
'아하, 지금 첫째 아이가 큰 방에서 나와서 냉장고에서 뭘 꺼내 먹고 화장실에 들러서 용변을 본 후 뛰어서 작은 방으로 가서 의자를 바닥에 까딱까닥 거리고 있구나! 초등학생인데 지금까지 안자고 뭐하지, 빨리 자야 내일 학교를 갈텐데, 안잘거면 조용히라도 있던가. 왜 이렇게 쿵쿵대는 거야'
며칠 지켜보다가 윗집 현관에 편지를 붙인다. 밤 10시 이후에는 조심해줬으면 좋겠다고...
우리 집 현관에 답장이 왔다. 지금보다 조심하라고 하면 발모가지를 자르고 살아야 하냐고.
우리 집에서 당신네 눈치 보면서 살아야 하냐고. 당신이 집값 대줬냐고. 너무 예민한 것 같으니 정신과 치료 받아보라고...
이번에는 윗집과의 감정대치다.
이렇게 나도 양손으로 꾹 눌린 샌드위치 속 햄 마냥 아래 위로 고충을 겪어봐서 안다.
공감하는 내용
층간소음 민원카페에 가서 많은 글들을 읽어보면 모두 비슷한 내용들이고 모두 공감이 간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모든 문제의 근원은 감정싸움이다.
한 번 감정이 상하면 상대방이 싫을 수 밖에 없고, 싫은 사람이 잘못하면 더 큰 분노로 작용하는 법이니
층간소음 갈등이 딱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밟고 있는 것이다.
내 아랫집에 나의 가장 친한 친구 가족이 살고, 내 윗집에 우리 부모님이 살고 계신다면
새벽에 축구를 하고 노래방 마이크로 폭주를 한다고 해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그게 사람의 속성이고 근원적 마음이다.
어떤 사람인가에 따라서 손해를 감수할 수 있는 정도가 달라지는 것이다.
결국 인간의 마음 문제인 것이다.
맺음말
감정싸움으로 치닫기 전에 (나를 포함하여)이웃간에 상대방의 입장에서 먼저 공감하고, 공동주택의 에티켓과 약속을 지키는 성숙한 내면을 갖추기를 감히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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